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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복역한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통일?”

기사승인 2018.05.14  0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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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학섭 “문재인 정상회담, 당장 효과 나왔다”

▲ 43년을 미전향 장기수로 복역한 통일운동가 안학섭 선생이 12일 민족예술제 행사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최장 비전향 장기수 중 한 인물인 안학섭(89.남) 선생이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일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던 안학섭 선생은 지난 1953년부터 43년을 비전향 장기수로 체포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복역하다 1995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했지만 현행 보안관찰법에 따라 출소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관계당국의 감시를 받고 스스로 동향보고를 해야하는 등 반 감옥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안학섭 선생은 12일 경기도 김포시 통진군 소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소회에 대해 “여기(기자와 만난 장소)는 민통선이 가까운 곳으로 또 그동안 여기는 남북이 (상호 비방) 방송을 켰었던 곳이다. 지난 남북교류당국에 의해 남북의 확성기가 정상회담 후에 끊어졌다. 삐라도 여기서 뿌리는데...”라고 지난달 27일 있은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정리했다. 

안학섭 선생은 이어 “지금 이런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판문점 선언이 나온 것에 대한 소회”를 묻자 “민족이 통일되는. 김대중 대통령이 용단을 내주었지만 그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는데 회담만 했지 결과는 이뤄진 것 없다. 노무현 때 한강하류공동이용 있잖나?노무현 때 한강하교공동이용에 대한 것이 합의가 됐다. 하자고. 근데 어떤이들(안보팔이 가짜보수 세력)이 반대하니까 못했다. 실제는 이 한강하류공동이용을 하면 유리한 건 여기(남한측)가 더 유리하다. 그런 것도 못하잖아. 남북 간에. 간극이 가까워져. 그동안은 이명박부터 박근혜까지 지연은 시킬 수 있지만. 저는 물론이고 우리 민족과 후대들을 위해서 당연한 일인데 너무 늦었고. 여기서는 나약하기 때문에 끌면 나온다고 그런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안 본다”라고 남북 관계를 정리했다.

안학섭 선생은 이어 “남북 이념 논란을 가지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다. 최근 남북교류 진척 상황에 대한 소회를 말씀해 달라”는 주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한 것도 헌법 위반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고. 우리 헌법에서도 북측을 최대로 인정해라. 우리가 인정받는 만큼 인정을 해야 되고, 거기에 대한 서로의 협상이 있어야 된다. 우선 그거(헌법)부터 고쳐야 한다”면서 “나는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전에 투기 세력들이 그렇게 해 먹었다. 그리고 아직도 현 정권하에서 내가 투기했다. 이렇게 했다. 국정원이 조작을 많이 했다. 모든 이념과 국민분열의 원인이 국정원 조작이었다. 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라고 남북간 화해분위기 조성에 있어 개선해야할 우리측 책무를 지적했다.

안학섭 선생은 또한 “통일부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학섭 선생은 이에 대해 “우리가 진정한 민주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법도 바꿔야 되고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된 제도나 관념 자체도 바꿔야 된다”면서 “민족은 하나라는 관념이 있어야지 그들을 적대시하고 우리의 주적이라는 개념 자체도 바로 적립을 해야 진정한 남북 조합이 되고 독립성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학섭 선생은 이에 대해선 “남조선 정부에서 군인들이 들어오는데 여기는 참 같은 민족으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문화가 틀어지고. 참 찌르고 싶다. 그 얘기하다가도 뭐 틀리고 하면 공안국 대표가 지적을 하고 하면 미군들이 위관급 연관급한테 뺑 해버린다. 그것이 현실이다. 몇 번 봤다”면서 “그리고 정작 협정을 누구하고 한 거는 다 잘 알고 있을 거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 우리측은) 어떠한 말을 할 권리가 하나도 없다. 군대는 통치수단의 하나다. 군대의 통치권 작수권이 없다. 그래도 나라인가?”라고 작금의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자주적 결정권이 미약함을 개탄했다.

안학섭 선생은 이에 대해 “최고 통수자가 수단까지 빼앗기고도 뭘 나라라고 하나?”라면서 “그렇다보면 남북관계가 모순이 아니라는 거다. 기본적인 문제가 풀리면 따라서 풀리게 돼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국을 여기서 몰아내고 소위 한미 군사 협정이라는 거 이거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겪은 과거지사를 예로 들었다.

안학섭 선생은 이에 대해 “참고로 말씀드리는데 제가 그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인데 지금 정보부의 모 과장이라고 한다”라고 하자 본지 기자가 “이름 아시는가?”를 묻자 “잊어버렸다”고 대답하고는 “시점은 언제인가?”라고 묻자 “60년대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는데 자기 주장을 하는 거다. 나도 로봇이 아닌데 그냥 잠자코 듣고 있을 수가 없다. 틀리면 틀리다고 그 자리에서 반박을 했다. 니들 통일 통일 하지만 통일되면 자기들은 5분 만에 죽어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난 목숨 걸고 통일하자고 나왔는데 그렇다고 목숨 걸고 반대한다. 통일하면 안 돼. 그리고 들어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공안국 당원하고 노동당원하고 노동당원 가족들, 간부들, 나머지 민주화 운동한 사람 다 죽어야 된다. 그런 통일해야겠나?”라면서 우리민족끼리의 분열을 강하게 반대했다.

안학섭 선생은 나아가 “안 해야 한다. 그런데 얘들은 연방제. 합리적인 가장 연방제를 근데 얘들은 연방제 얘기하면 까무러친다. 왜? 자기네들이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하는 거다. 가장 합리적인 것이 연방제다. 지금 못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정말 자주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남한)는 식민지 교육을 받으며 110년 동안을 식민지하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여기는 기형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제대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다”라고 남한 사회에 대해 분석했다.

안학섭 선생은 다시 “그리고 제국주의자들이 바라는 건데 기형적으로 자라는 것을 바라고 있다. 정상적으로 건전하게 자본주의자들이 자라면 반항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한 번 어디서 보니까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한다. 5천여년 역사를 보고 유구한 역사라고 하는데 민족성을 말살시키기 위해서 첫째, 국제 변론을 시키라는 거다. 국제 변론을 시키되 모르게 해야 한다. 모르게. 그러되 거기에 민족적으로 비슷한 일본, 몽고, 이런데 여자도 결혼 시켜라. 즉 혼혈을 만들어라. 이런 식으로 한 게 한 50여가지가 나왔다”면서 “우리나라 단일 민족이라고 단합이 되니까 이것을 없애기 위해서... 제가 부산(교도소)에 있을 때인데 이명박이 유치원에서부터 영어교육을 한다고 했다. 제국자들이 되면 어느 부분을 말살시킨다. 일본놈들이 조선카드를 줘서 카드를 뺏어간다. 조선말을 하면. 언어문화를 말살시킴으로써 민족을 말살시키겠다는 거다. 그래서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겠다는 거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매국노들. 거기에서 치킨을 얻어먹으면서 자기 일가 친척, 자기 가족에게 자기 종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숨에 설명하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안학섭 선생은 특히 민족 말살에 대해 “내 이 말을 왜 하는가 하니 지금 여기 애들이 무분별하게 외국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다. 변형된 기형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위 실용주의라고 개인 이기주의. 내가 식사하러 가자고 하면 내가 대접할 능력이 있어야 같이 가지, 가자고 안 한다”면서 “내 것은 내가 내고, 네 것은 네가 내라. 이럴려면 뭐하러 같이 가자고 하나? 혼자 가서 먹지. 우리 민족의 문화는 그게 아니다. 대접하고 배려하고 감싸고. 우리말에서 ‘우리’라는 말이 참 아름다운 말이다”라고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했다.

안학섭 선생은 나아가 “일본, 미국, 중국 사람도 ‘우리’라는 말에 대한 우리말. 여기에 함축돼 있는 것이 그들의 언어에는 없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자주가 꼭 필요하다. 자주성이 없으면 노예밖에 안 된다. 자주가 강하면 고집이라고 하는데 고집과 자주는 다르다. 주관과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기본 모순은..”이라면서 “때문에 남북관계를 주요 모순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주요 모순이지만 기본 모순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미운동이 현재 단계로서는 앞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라도 바닥에 남은 것 빼기 위해서 반미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학섭 선생은 나아가 “과거 코소보나 과거 징기스칸이 강제해서 족속을 섞어버림으로써 3대에게 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해버리는 듯한 민족말살정책을 우리에게 구사했다. 유태인 전술이라고 해서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에 대해 단절을 많이 시키기 위해 민족말살정책을 하는 것”이라면서 “이명박이 다가구, 다세대를 넘어서 이제는 다문화를 주장한 것 자체가 민족을 섞기 위한 하나의 민족말살정책의 시초다”라고 주장했다.

안학섭 선생은 “그렇게 해서 민족의 2세, 3세가 나왔을 때는 도대체 아버지 나라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게 된다”라며 “그래서 민족을 말살시키기 위한 시책이라는 거다. 일제시대 때 했던 친일파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단일민족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한편,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89세) 선생은 1930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만주사변(1931), 중·일 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으로 전쟁을 확대하며 이른바 민족 말살통치를 하던 잔인한 시기였다. 안학섭 선생의 두 형은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둘째 형은 훈련소에서 도망했고, 안학섭 선생과 가족들은 도망자 신세가 됐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민족의 반역자 이승만과 미군정은 수월하게 집권하기 위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친일파들을 중용했다. 안학섭 선생은 이런 정권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950년 자발적으로 의용군이 되어 북으로 갔다. 민청훈련소에서 정치교육을 받은 안학섭 선생은 서울정치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1952년 10월, 전선을 넘어 임무를 띠고 남으로 내려왔지만 1953년 4월초 강원도 정선에서 수색에 걸려 붙잡혔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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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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