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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특집, 김용장 “학살 후 시신을 은밀히 이송했다”

기사승인 2019.05.14  09: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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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장 5·18 학살 증언 문답 “광주통합병원서 시신 200구 소각했을 것”

▲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미군 정보 요원 출신 김용장 씨(우)와 5.18민주화운동 양심선언 허장환 씨가 공동으로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전두환의 시나리오였다’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과 대담하고 있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은밀히 타 지역으로 옮겨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내란범 전두환 신군부가 무자비하게 광주 학살을 자행한 후 희생자들의 시신을 은밀하게 군 작전하면서 타 지역으로 옮겼다는 거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시신 이송 관련 폭로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40년동안 사망자나 실종자, 행방불명자 등 희생자들에 대한 비밀이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주한미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김용장씨는 같은 시기 전두환 신군부 특명부대 소속 허장환씨와 함께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폭로했다. 5·18 당시 광주서 활동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김용장·허장환 씨는 이날 국회에서 증언하면서 “광주통합병원에서 희생자 시신 200구 정도가 소각됐다고 추측할 수 있다”면서 “각 소각로 1기당 소각할 수 있는 시신의 숫자를 추론해보면 이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용장 씨는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에 대해 이같이 밝히면서 “그렇게 계산해도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어 시신을 어디론가 다른 지역으로 수송됐을 것”이라고 증언했는데, 김용장 씨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는 점은 김용장 씨는 과거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군 방첩정보부대인 501정보여단 방첩부대 군사정보관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근무했다가 1988년 광주청문회에서 양심선언을 한 허장환 씨도 함께 회견에 나서 “전두환이 (계엄군 발포 직전인) 5월 21일 광주에 다녀갔다는 것은 확인된 사항”이라며 “입증해드릴 수 있다”고 말했고, 김용장 씨는 이에 대해 “비행 계획서 Flight Plan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고 폭로했다.

김용장 허장환 두 증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선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 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보다 상세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특히 김용장 씨가 폭로한 내란범 전두환이 특전사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하기 직전인 21일 오후 쯤 헬기를 이용해서 광주를 찾았다고 폭로해서, 그간 전두환이 “광주에 간 적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과 배치되는 증언이어서 향후 파장도 예상된다. 

다음은 기자회견 후 기자들은 김용장·허장환 씨와의 일문일답을 진행하면서 “시신소각과 희생자 암매장 관련한 첩보는 있었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용장 씨는 “5공 청문회 때 정호용 씨가 ‘암매장은 없었다. 단, 있다면 가매장이 있었다’고 스스로 대답했다. 가매장한 시신은 재발굴해 일부는 광주통합병원에 가서 소각됐고, 일부는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해공항으로 수송됐다. 광주에서 김해공항에 간 이유는 제 추론에 의하면 거기서 틀림없이 수장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물속에다 
시신을 유기했을 것이라는 거다.

기자는 이어 “당시 가매장한 시신 지문을 채취했다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는가?”라고 질문하자 허장환 씨는 “거의 100%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들은 행방불명으로 처리됐는가, 아니면 사망자로 확인됐는가?”라고 묻자 허장환 씨는 다시 “그 업무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시신유기를 그런 식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다시 “가매장된 시신 중 지문을 채취한 시신은 몇 구 정도인가?”라고 묻자 김용장 씨는 “그 숫자는 보고서에 넣지 않았다. 다만 추론은 할 수 있다. 당시 광주통합병원에서 개조한 굴뚝에 2구 정도를 넣고 소각하면 2시간 정도 걸렸다. 하루에 20구씩, 10일 동안 200구 정도 소각하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증거는 없다. 다만 그렇게 계산해도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어 어디론가 다른 지역으로 수송됐을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기자가 다시 “(전두환의) 보안사령부가 시민 행세하는 사복군인(편의대)을 광주에 투입한 사실을 확인했나?”라고 묻자 허장환 씨는 “1988년 청문회 당시 정호용 씨가 답변 과정에서 ‘요원들에게 편의복을 사주기 위해 왔다 갔다’고 말했다. 이는 정호영 씨가 편의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중요한 발언이다. 편의대를 총괄 지휘한 사람이 광주일고 출신 홍석률 대령이었다. 공작대가 몇 명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다만 30∼40명이 아니고 수백명이 와서 활동하고 그때그때 활동 철수하고 다시 다른 사람들로 교체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의대에 대해 기자가 다시 “사복군인이라고 생각한 근거와 목격한 시간과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가?”라고 묻자 이번엔 김용장 씨가 “얼굴이나 움직임으로 봐서 군인들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9일인지 20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들이 비행장 격납고에 들어가 우연히 밖으로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3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봤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김용장 씨는 이어 “5월 21일 전두환이 광주에 왔다는 증거 서류가 국내에 남아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5·18 당시 작성돼 미 국무성과 국방부에 올라간 보고서는 이미 비밀 해제가 됐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요청하면 당연히 내가 쓴 것들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에 대해 허장환 씨는 “전두환이 5월 21일에 광주에 왔다는 것은 확인한 사항”이라면서 “전두환이 다녀갔다는 문제는 회의석상에서 거명된 문제이며, 입증해 드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장 씨는 “헬기 사격 관련해 미국에 올린 첩보 내용을 설명해 달라”라는 질문을 받고는 “‘5월 21일 낮에 UH1H 소형 헬기에서 M60으로 사격했다’고 (미국 정보국에) 보고했다. 위치는 도청 주변이었다. 27일에는 광주천 상공에서 위협사격을 했다고 보고했다”면서 19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 시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바로 전일빌딩(전남일보 빌딩)이었다고 보충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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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저작권자 © 한국인터넷언론인협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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