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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우현 안내상 “백골단 최루탄 진압봉”

기사승인 2018.01.12  09: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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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호 우현 안내상 “자꾸 생각나니까 훌쩍!”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11일 저녁 JTBC 인기 시사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해 우현 안내상과 민주화운동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상호 의원과 우현 안내상 유시민은 과거 1987년 6월 항쟁을 회상하며 고 이한열 열사를 회고했다.

우상호 우현 안내상 이들은 어떤 만남일까? 우상호 의원은 매년 ‘그날’ 눈물을 흘린다. 이런 우상호 의원에게 “우상호 의원님 왜 우세요?”라고 물으면 우상호 의원은 울먹이면서 “생각이나니까..” 우상호 의원은 이한열 박종철 두 열사와 안내상 우현 등 과거 동지들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우상호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국회 본청 로텐더 홀에서 눈물을 흘렸다. 본지 기자는 물었다. 왜 우상호 원내대표가 우시느냐고, 바로 이한열 열사 때문이다.

우상호 우현 안내상 이야기로 귀결되는 11일 ‘썰전’에 출연하기 전 우상호 의원은 11일 ‘썰전’을 꼭 시청해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우상호 의원이 하고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이한열 열사’ 관련한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날 우상호 의원은 배우 우현과 안내상의 인연을 밝혔다.

우상호 의원은 11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JTBC 시사 교양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해서 과거 우현 안내상 등과 함께 6월 항쟁의 선두에 서 있던 우상호 의원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이날 ‘썰전’은 故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우상호 의원과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우현의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우상호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우현은 사회부장이었다.

이날 썰전에서는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故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우상호 의원이 출현을 한 것이고, MC 김구라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 속에 있는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의 사진이었다. 이들은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연세대학교 학생 故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영정 옆을 지키고 있었다.

우상호 의원이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우현, 안내상과 6월 항쟁을 이끌었을 당시엔 연세대학교가 백골단(경찰 사복 폭력집압 기동대)에게 포위당할 정도로 ‘빠시게’ 강경 민주화 투쟁을 벌였을 때였다. 회상해보면 1987년 연세대학교 정문 앞은 연일 수백명의 백골단이 진을 치고 교정을 노려보고 있었고, 연대생들이 민주화 투쟁의 노래(운동가)를 부르며 교정밖으로 쏟아져 나오노라면 영락없는 토끼몰이(대학생들을 포위해서 추격하는 모양새)가 시작되고 소위 지랄탄과 사과탄 등 최루탄 폭발음이 요란하게 울리며 흡사 연막탄 안개속처럼 거리는 뿌옇게 최루탄 연무로 뒤덮였다.

우상호 우현 안내상 등이 학생운동권에서 활약했던 연세대 정문앞은 보도블럭 조각이 날고 백골단의 몽둥이가 휘날리며 곳곳에서 폭음과 비명과 신음이 난무했다. 전쟁터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이런 6월 항쟁은 끝내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끝자락으로부터 6.29 선언을 받아냈고, 이땅엔 잠깐 민주화의 꽃이 피는 듯 했지만,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은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하에 과거의 적폐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신문방송은 연일 학생들의 과격 시위장면만 편집해서 내보내며 신촌 인근 상인들이 학생들 집회 시위로 장사를 못해먹겠다는 학생들 원성의 소리만 방송하면서 민주화 투쟁을 폭력 시위로 몰고갔다. 결국 당시의 민주화투쟁은 정권과 언론이 그 의의를 역사에 묻어둠으로써 민주화의 꽃은 이내 시들고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우상호 의원은 우현, 안내상과의 인연을 공개했다. 우상호 의원은 “우현이 ‘무한도전-못친소 편’에 나왔을 때 이 사람이 못생겼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는 한번도 이 친구가 못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때는 상당히 귀여웠다”고 이날 출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우상호 의원의 안내상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진다.

우상호 의원은 사진 속 우현이 삭발한 이유에 대해서도 고자질했다. 우상호 의원은 “4.13호헌조치 때 연세대생들이 항의를 하면서 총학생회 4~5명이 머리를 밀어야 했다. 그래서 단식을 할 것인지 삭발을 한 것인지 물었더니 우현은 못 굶겠다고 말했다. 결국, 제가 단식을 하고 우현의 머리를 제가 직접 밀어줬다”고 밝혔다.

모처럼 ‘썰전’에 출연한 우상호 의원은 배우 우현, 안내상과의 인연에 대해선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故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의 선두에 서 있던 장본인이 우상호 의원이었던만큼 우상호 우현 안내상 관련 화제는 당연한 거다.

MC 김구라 이상호 우현 안내상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 속에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배우 우현씨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우상호 우현 안내상은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숨진 연세대학교 학생 故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영정 옆을 지키고 있었다.

우상호 의원은 “사진을 잘 보면, 우현씨 머리는 삭발 한 것이다. 이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이라고 사진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배우 안내상과의 인연도 말했다. 우상호 의원은 “자신의 신혼집에서 안내상 우현과 함께 지냈고 당시 이문식 이필모 등도 안내상과의 인연으로 집에 자주 찾아왔다”고 했다.

이어 우상호 의원은 1988년 미국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던 안내상에 대해 “미국을 못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상호 이야기는 안내상이 미국문화원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것을 미국측에선 테러리스트에 넣은 것 같다는 이야기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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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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